▣ 경복궁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새로운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지어졌다.

        경복궁은 동궐(창덕궁)이나 서궐(경희궁)에 비해 위치가 북쪽에 있어 '북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경복궁(사적 제 117호)은 5대 궁궐 가운데 으뜸의 규모와 건축미를 자랑한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가진 왕들을 보면

        제2대 정종, 제4대 세종, 제6대 단종, 제7대 세조, 제9대 성종, 제11대 중종, 제13대 명종 등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상당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진 아픔을 갖고 있으며,

        고종 때에 흥선대원군의 주도 아래 7,700여칸에 이르는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또 다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면서

        왕조의 몰락과 함께 경복궁도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경복궁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경회루와 향원정의 연못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근정전의 월대와 조각상들은 당시의 조각미술을 대표한다. 현재 흥례문 밖 서편에는

        국립고궁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고, 경복궁 내 향원정의 동편에는 국립민속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하얀눈내린 고궁( 경복궁) 의 설경입니다.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이 다리를 남쪽에 다시 지은 것은 1953년이다. 향원지의 근원은 지하수와 열상진원샘이며,

    이 물은 경회루의 연지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다.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바로가기경복궁 http://www.royalpalac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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