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문화재단지는

         1997년에 개장한 역사 교육장이다.

인류문명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재현하여,

조상들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해 설립되었다.

 

          약 109,091m²(3만3천 평) 규모의 부지 위에

지방유형문화재 제 49호인 문산관을 비롯하여, 전통가옥, 

민속자료전시관 등 10동의 고건물과 장승, 연자방아,

성황당 등 옛 생활터전이 재현되어 있다.

         

 

 

 

 

 

 

 

 

 

 

 

 

 

 

 

 

 

 

 

 

 

 

 

 

 

 

 

 

 

 

 

 

 

 

 

 

 

 

 

 

 

 

 

 

 

 

 

 

 

 

 

 

 

 

 

 

 

 

 

 

 

 

 

 

 

 

 

                                 

          

       

 

 

 

          3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청주 상당산성를 돌아보기위해 산성입구로 향합니다.

산성입구에 도착하였을때는 이미 늦은오후 시간이네요.

한바퀴 돌아보는데 한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는

현지인의 말을 듣고 산성길을 오릅니다.

중간쯤 다다랐을때 일몰풍경이 그려지고 있네요..

두터운 구름층을 뚫고 노을빛이 청주 시내에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산성길에서 청주시내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 삼국시대 포곡식 석축산성

상당산성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듯하다. 둘레가 4km를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1996년 현재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

 

 

 

 

 

 

 

 

 

 

 상당산성의 구조 및 축조법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일정하지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 法)     

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매괴성모순례지 매괴성당

1896년 프랑스 신부 임가밀로에 의해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설립된성당으로

고딕양식의 절제된 멋을 느낄수 있는곳입니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위치하고 있는

 매괴성당을 들려 보았습니다.

 감곡을 지나다니면서 늘 궁금했던곳이지요.

 건축물이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입니다.

  매괴동산을 순례해 보기로 합니다.

 

 

 

 

 

 

 

 

 

 

 

 

 

 

 

 

 

 

 

 

 

 

 

 

 

 

 

 

 

 

 

 

 

 

 

 

 

 

 

 

 

 

 

 

 

 

 

 

 

 

 

 

 

 

 

 

 

 

 

 

 

▣ 금강산을 닮은 산, 금월봉

    금월봉은 지난 1993년 아세아시멘트주식회사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사용되어 오던 산이다.

 

    그러던 중 기암괴석군이 발견되었는데 그 모형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대로

    빼어닮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령스런 바위산 금월봉.

    금월봉은 뛰어난 풍경과 더불어 태조왕건, 명성황후, 이제마, 장길산 등

    TV 및 영화촬영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수년에 걸친 작업 끝에 예전의 평범한

    야산에서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령스런 바위산으로 변모하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제천에서 청풍문화재단지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게 되는 금월봉입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모양이 마치 거대한 수석같은 느낌이 드네요.

    도로옆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아 가볍게 들려봐도 좋은곳입니다.

 

 

 

 

 

 

 

 

 

 

 

 

 

 

 

 

 

 

 

 

 

 

 

 

 

 

 

▣ 하선암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바위는 넓이가 백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있는데, 그 형상이 미륵같아 <불암>이라고도 불리운다.

 

그 바위는 조선 성종조 임재광 선생이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 하여 <선암>이라 명명하였는데 거울같이 맑은

명경지수가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 <홍암>이라고도 한다.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진 장관은 가히 별천지라 이를 만하다.

특히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상선암하류에  위치한 중선암은

그 유명한 단양팔경중 제7경으로 조선 효종조 문신이었던 곡운 김수증이 이름 붙인 곳으로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며 흰색의 바위가 층계 모양을 이루고 있어 늘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고

울창한 숲이 있어 찾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주는 곳이다.

야트막하고 작은 자갈돌을 흐르던 물길이 점점 커지는 돌길을 지나고

바위사이를 비집고 내려가다가 갑자기 커다란 암반사이로 흘러내린다.

암반옆으로는 수백년된 소나무가 암반을 온통 그림자로 뒤덮고 있기도 해

두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진짜려니 싶어진다.


암계류에서 쌍룡이 승천하였다 하여 <쌍룡폭>이라고도 칭하며 계곡안에 박혀있는

하얀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는 각각 <옥염대>와 <명경대>라 불린다.

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라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는데 이는 조선 숙종 43 년

관찰사 윤헌주가 특서한 것으로 사군이라는 것은 당시의 단양, 영춘, 제천, 청풍을 이른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명현 묵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위에 각자된 이름만도 300명이 넘는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상선암(上仙岩)

    단양 남쪽 12km 지점의 가산리에 있으며,

    중선암에서 약 2km 올라가면 수만 장의 청단대석(靑丹大石)으로 된

    벽과 반석 사이로 흐르는 계수(溪水)가 폭포를 이루고 있어 절경이며,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말종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겹다.

 

    맑은 벽계수가 용출하여 반석 사이를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 폭포가 되어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는 우레 같고 튀는 물방울은 보는 이의 옷깃을 적신다.

    조선 명종조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명하였으며,

    그는 이곳에 소박한 초가정자를 짓고 "신선과 놀던 학은 간 곳이 없고 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와 닿는 그런 곳이 바로 상선암일세"라며 욕심없는 인생을 즐겼다 한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단양은 여러번 여행해 보았지만

    단양8경의 상선암을 찾아 보긴 처음인것 같습니다.

    가까이까지왔다가 그냥 지나치곤 했었는데.....

    도로와 인접해 있고 아치형의 다리가 설치되어있습니다.

    바위의 계류를 타고 흐르는 물길도 예쁜계곡미와 어우러지고......

    단풍이 지고 난 늦가을의 상선암의 풍경이 조금은 쓸쓸해 보입니다.

 

 

 

 

 

 

 

 

 

 

 

 

 

 

 

 

 

 

 

 

 

        반영된 모습을 살짝 돌려 세워보았습니다.  

                                                          또 다른 느낌이 들지요.....

 

 

 

 

 ▣ 기암과 계곡과의 만남이 장관을 이루는 사인암

 대강면 사인암리에 위치한 사인암은 선암계곡의 상.중,하선암과 함께

 단양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단양팔경 중 하나이다.

 단양 남쪽 남조천변의 푸르고 깊은 계류를 끼고 있는 높이 70m의 기암절벽이다.

 

 단양팔경을 방문하는 관광객 대부분은 도로 여건상 사인암을 가장 먼저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사인암 앞으로 흐르는 계곡을 운선구곡이라 하며 단양팔경 중에서도 제일 빼어난 경승지로 손꼽는다.

 암벽에 "탁루불군 확호불발 독립불구 돈세무민" 즉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라는 우탁 선생 친필 각자가 있고,

 암상에는 노송까지 곁들여, 마치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

 

▣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행적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당시 우탁은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 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을 지냈고 이후

 그의 고향인 단양 땅으로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이런 연유로 인해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가 우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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